시장 이야기
재래시장과 함께하는 단디몰
부산 재래시장 상인들이 직접 손질한 물건을 산지에서 도매가 그대로 직송합니다. 지금은 부산의 시장들과 함께하고, 앞으로 부산 전체와 전국의 재래시장으로 넓혀 갑니다.
대형 온라인몰과 다른 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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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장 상인이 직접 팝니다
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이 직접 판매자로 입점해, 자기 상점 이름으로 물건을 내놓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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산지/도매 그대로 직송
산지와 도매에서 들여온 물건을 시장 상인이 손질해 바로 보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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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러 상점, 한 번에 결제
여러 상점의 상품을 한 번에 결제하면 상점별로 준비해 함께 포장해 보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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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장에서 찾아가기
픽업을 받는 상점이면 주문한 물건을 시장에서 직접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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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인에게 돌아가는 구조
판매 대금은 상점마다 정산되어 물건을 판 시장 상인에게 돌아갑니다.
여러 상점 > 한 번의 결제 > 상점별 분리 > 합포장 > 배송
함께하는 시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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구포시장 이야기
부산 북구
부산 북구 구포동 | 400년
모이고 갈라지던 자리
구포는 조선시대 감동진(甘同津)이라 불린 낙동강 3대 나루였습니다. 영남의 물산이 물길을 따라 모여 집산되고, 다시 갈라져 각지로 나갔습니다. 시장은 그 나루 곁에서 자랐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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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7세기
구포장이 서다
포구가 형성되며 오일장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. 학계는 구포시장의 역사를 최소 400년으로 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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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682
감동창 설치
세곡을 저장하는 창고가 들어서면서 상권이 크게 성장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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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770
문헌에 남은 3일과 8일 장
『동국문헌비고』에 구포장이 매월 3일과 8일에 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. 지금도 3일과 8일에는 장이 두 배로 커집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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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19
구포장터 만세운동
3월 29일 장날, 구포장터에서 약 1,200명이 만세를 불렀고 43명이 옥고를 치렀습니다. 지금은 '구포 만세길'로 남아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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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32
상설시장으로
목조 건물을 지어 상설시장으로 전환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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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50년대
구포국수
전쟁 이후 피란민의 값싼 한 끼로 시작한 국수가 구포를 대표하는 전국 브랜드가 되었습니다.
지금의 구포시장
- 870상설 상점
- 4,220상인
- 5특화 거리
약재, 의류, 야채과일, 수산물, 먹자 거리가 있고, 3일과 8일에는 상점 1,500여 곳과 노점 500여 곳이 들어섭니다.
온라인에서도 같은 일을 합니다
여러 상점의 상품을 한 번에 결제하면, 상점별로 나뉘어 준비되고, 중앙에서 다시 함께 포장되어 나갑니다. 400년 전 나루가 하던 일과 같습니다.
앞으로
단디몰은 부산의 재래시장에서 시작했습니다. 부산 전체의 재래시장으로, 그리고 전국의 재래시장으로 함께하는 시장을 넓혀 갑니다.
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상인이라면 단디몰에 상점을 열 수 있습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