부산 북구 구포동 · 400년
모이고 갈라지던 자리
구포는 조선시대 감동진(甘同津)이라 불린 낙동강 3대 나루였습니다. 영남의 물산이 물길을 따라 모여 집산되고, 다시 갈라져 각지로 나갔습니다. 시장은 그 나루 곁에서 자랐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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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7세기
구포장이 서다
포구가 형성되며 오일장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. 학계는 구포시장의 역사를 최소 400년으로 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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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682
감동창 설치
세곡을 저장하는 창고가 들어서면서 상권이 크게 성장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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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770
문헌에 남은 3·8장
『동국문헌비고』에 구포장이 매월 3일과 8일에 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. 지금도 3일과 8일에는 장이 두 배로 커집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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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19
구포장터 만세운동
3월 29일 장날, 구포장터에서 약 1,200명이 만세를 불렀고 43명이 옥고를 치렀습니다. 지금은 ‘구포 만세길’로 남아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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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32
상설시장으로
목조 건물을 지어 상설시장으로 전환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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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50년대
구포국수
전쟁 이후 피란민의 값싼 한 끼로 시작한 국수가 구포를 대표하는 전국 브랜드가 되었습니다.
지금의 구포시장
- 870상설 점포
- 4,220상인
- 5특화 거리
약재 · 의류 · 야채과일 · 수산물 · 먹자 거리가 있고, 3일과 8일에는 점포 1,500여 곳과 노점 500여 곳이 들어섭니다.
온라인에서도 같은 일을 합니다
여러 상점의 상품을 한 번에 결제하면, 상점별로 나뉘어 준비되고, 중앙에서 다시 함께 포장되어 나갑니다. 400년 전 나루가 하던 일과 같습니다.
여러 상점 → 한 번의 결제 → 상점별 분리 → 합포장 → 배송